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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INTP 여자입니다

 

▼ INTP 성격 설명은 ▼

 

성격유형 : “논리적인 사색가” (INTP-A / INTP-T) | 16Personalities

성격유형 : “논리적인 사색가” 과거에서 배우되, 현재에 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세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Albert Einstein 사색가형은 전체 인구의 3% 정도를 차지하는 꽤 흔치 않은 성격 유형으로, 이는 그들 자신도 매우 반기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색가형 사람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이들이 또 없기 때문입니다. 이 유형의 사람은 그들이 가진 독창성과 창의력,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관점과 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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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인구 77억 명을 16가지 성격 유형으로 나누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열 몇 가지로 분류하겠는가. 하지만 MBTI가 나를 구원해준 건 확실하다. 덕분에 처음으로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해받는다는 느낌도 처음이었다.

 

지난 7~8년간 우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혹시 성인 ADHD인지 혹은 조울증인지 고민도 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괴롭혔다. 나는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밝은 A의 성격을, 센스 있는 B의 언변을, 조용하지만 매력 있는 C의 말투를 닮고 싶었다. 내 본모습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랐다. 사회와 동떨어져있는 나를 없애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본성은 어떻게든 튀어나오는 법. 내 성격을 통제하려고 할수록 내 말과 행동은 더 어색하고 어긋났다. 오래된 장롱문처럼 삐거덕거리기만 했다. 그럴수록 내가 더 싫어졌다.

 

작년에 넷플릭스 영화를 보다가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2년 전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MBTI 검사를 했다. 결과를 읽는데 충격적일 만큼 위로가 되었다. 정보가 성에 안 차 포털 사이트에 INTP를 검색하고, 유튜브로 관련 영상도 보고, 댓글도 읽고…. 찾아보는 내내 웃음만 나왔다. 다른 INTP 유형 사람들의 생각 회로가 나랑 너무 똑같아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INTP에 관한 글이 너무 적어서 아쉬웠다. 그래서 나를 분석하기로 했다.

 

 

 

 

 


 

10대 일화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여도 앨범을 산 적이 없다. 어차피 금방 흥미가 떨어질 걸 알기에 사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 못 했다. 자지는 않았는데, 딴생각하느라 바빴다. 머릿속에서는 좀비가 갑자기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던가, 어제 본 드라마를 재생시키거나 변주했다. 현실보다는 공상, 망상, 상상 속에 살았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이 내 성적을 듣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적이 X등급이니까 이 정도 대학 가겠구나.”

“선생님, 저 그 정도는 아니에요.”

겸손도 아니고, 정말 그 대학에 갈 수 없는 성적이어서 그렇게 말했다. 그때는 선생님이 왜 당황하셨는지 몰랐다.

 

-친구가 어제 떡볶이 먹은 이야기를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집에서 떡볶이를 먹는데 마을버스가 우리 집을 부수고 들어왔다 정도의 이야기면 모르겠는데, 소소한 일상을 왜 전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혹시 이 이야기는 왜 하는 거니?’ 따위의 질문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도 일상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수학 선생님은 내게 이과적인 성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문과였다.

 

-집에서 별명이 찬물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이 망할 성격은 왜 나한테 왔는가. 차라리 남자로 태어났다면 삶이 조금 더 편하지 않았을까. (어느 성별이 살기 더 편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성격으로는 남자로 사는 게 더 나아 보였다.

 

-종교

 

-외로워서 이성과 만난다는 거는 희대의 미스터리. 외로움도 파국에 치달은 게 아니면 잘 모르겠다.

 

그래서 종교를 믿는다거나 외로워서 이성을 만나고 싶은 감정이 생겼으면 좋겠다. 어떤 감정인지 궁금하다.

 

 

변함없는 특징

-망각은 기본. 할머니 댁에 가는 버스 번호를 여태 외우지 못했다. 정기적으로 가는 치과에 가는 버스도 6개월 넘게 외우지 못했다. 친구의 기본 정보, 예를 들면 대학 이름도 깜빡한다.

 

-악의는 없고 그냥 관심이 없다.

 

-변덕이 심하다.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파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노래 하나에 빠져서 질릴 때까지 그것만 듣는다. 여기에 감정 기복까지 심하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사 표현에 서툴다. 대부분 말하기 귀찮아서 안 한다. 할 말은 많지만 어떤 말부터 해야 할지 나도 몰라서 안 한다. 그리고 나도 내 의사를 잘 모르는 것도 문제다. 결과적으로 말을 잘 못 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주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잠은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감정을 분석하고 있다. (제발 그만)

 

-상상 이상으로 게으르다. 움직이기 귀찮아서 물 마시는 것도 화장실 가는 것도 미룬다. 뭔가 먹고 싶다가도 부엌으로 가거나 사러 나가기 귀찮아서 그냥 안 먹는다. 무언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미루고 미루다 마감 시간이 닥쳐야 일을 시작한다. 모순적이지만,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하면 재빠르게 움직인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제일 행복하다.

 

 

INTP 단점에 대한 생각

사회에서 고립되기 쉬운 유형이라고 설명하는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외로움도 잘 안 느끼니까. 본인이 고립을 자초하고, 그걸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점이 진짜 문제인 것 같다.

 

 

진로

좋아하는 건 별로 없고, 호불호에서 ‘불호’만 확실하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내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Z 빼고 다 먹어.”였다. 솔직히 진로 고민을 할 때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잘하는 게 뭔가요?

없는데요.

좋아하는 건?

없어요.

 

항상 이런 식이었던 내게 진로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성격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이 (거의) 없는 직업을 찾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이다. 돌아보니 경영학과를 선택한 이유도 다른 전공보다 덜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걸 찾을 바에 싫어하는 것들을 가지치기하듯이 쳐내는 게 낫다. (가혹하게 쳐내면 남는 직업이 없겠지만,) 내게는 꽤 유용한 방법이었다. 이 사실을 대학교 졸업하기 전에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다.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 하고 싶지 않아서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하던데, 나는 그럴 그릇이 못 되는 것 같다.

 

 

자주 듣는 말

얼굴 생김새와 다르게 행동한다.

영혼이 없다.

너는 왜 네 얘기를 안 하니?

 

 

바라는 것은 딱 하나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지금까지 나 자신을 없애겠다는 목표에 너무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나를 완전히 버리는 건 불가능하고, 일단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인정하고 나니까 속도 편하고, 고칠 건 고치려고 마음먹게 되었다. 우울함에 허덕이는 것도 지긋지긋해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완전히 질려버렸달까. 역시 지겨워야 움직인다.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초고는 한글파일로 A4 2장과 노트에 직접 쓴 두 장. 써놓고 보니 진짜 이상한 사람 같다.

 

다른 INTP 유형인 사람이 나처럼 몇 년을 우울한 감정에만 에너지를 쏟지 않기를 바라며 마친다.

 

 

 

 

*혹시나 성향이 바뀌었을지도 몰라 어제 검사를 다시 했는데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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