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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방구석] 2021年 00月 00日:: 지영이와 민수 (下) 유리는 사람이 몰리기 전에 빨리 신문물을 경험하라며 독촉하더니 아예 소개팅을 주선해줬다. 생각보다 카페에 사람이 꽤 있었다. 코로나가 퍼지는 속도만큼 사람들도 그만큼 빨라졌다. 새로운 문화가 빠르게 전파하는 데 유리가 한몫한 게 틀림없었다. 이곳은 본의 아니게 9시 뉴스에 나오게 되었고, 이 소식이 sns에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내부는 꼭 벌집 같았다. 육각형 한 칸 한 칸에 애벌레가 있듯이 사각형 한 칸 한 칸에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북적이는 광경은 참 오랜만인지라 지영은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코인 노래방의 모든 벽이 투명하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예약하셨나요?” 지영은 반사적으로 민수의 이름을 내뱉었다. 카운터 너머의 여성은 고개를 숙여 명단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사장님인지 아..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1年 00月 00日:: 지영이와 민수(上) 그 사람이 코로나인 거 속이고 나온 거래. 제주도 다녀와서 자가격리 중이었대. 미친 거 아니야? 어우, 나 진짜 이해 안 가. 유리는 그동안의 일을 와르르 쏟아냈다. 지영은 유리의 침을 피하려다 움찔했다. 분명 유리는 노트북 화면 속에 있는데, 무얼 한 건가. 민망한 웃음이 코로 새어나갔다. 일주일 전에 유리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얼마 만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지 모르겠다며 유리는 소개팅 전날 밤 지영과 전화하다가 냅다 소리 질렀다. 그런데, 그 남자는 모든 사람을 실망시키려고 작정한 듯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유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영도 덩달아 흥분했다. 지영은 아까 커피에 에너지 음료까지 마셔서 그런 건지 아니면 유리가 점점 빨리 말해서 그런 건지 헷갈렸다. 신원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0年 10月 28日 :: 다짐과 교정 의사 선생님은 사랑니 네 개와 또 다른 네 개를 뽑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치아를 여덟 개나 제거하면 사람이 죽지 않는 건지 의문이었다. 나는 멀쩡한 이를 뽑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거울을 보거나 사진을 찍고 내 얼굴을 확인할 때마다 고기나 김치를 베어 물 때마다 교정을 결심했다. 오른쪽 앞니가 사십오 도로 삐뚤어져서 보기에도, 사용하기에도 거슬렸다. 다른 사람들은 내 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몰랐지만, 나는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하지만, 가지런한 치아를 원한 대가가 여덟 개의 생니라니. 나는 의사 선생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다행히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교정을 하려면 발치는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에 두 개씩 총 네 번에 걸쳐서 뽑았다. 잇몸에 단단히 박혀 있는 아이가 억지로 ..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0年 10月 18日 :: 우울함을 빼면 시체인 h에게 여름 끝자락에 9V 건전지를 보고 네 생각이 났다. 한두 달 전인가, 엄마와 산책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도어락에 불빛이 안 들어왔다. 아무리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해도 소용없었다. 엄마와 나의 머릿속 불빛도 꺼져버렸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전지 갈아야지 갈아야지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되었다. 업체를 부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급한 대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역시 인터넷은 모든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방전된 것이라면 9V 건전지로 도어락을 급속충전할 수 있고, 고장이 난 것이라면 창문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고장이 아니길 간절히 빌면서 동네 편의점에 종종걸음으로 걸어갔다. 고작 건전지 주제에 밥 한 끼 값이나 했다. 다른 곳과 가격을 비교할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우리 집 현관문에 다다..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0年 10月 13日 :: 이십 일세기 팔자 기술의 변화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쫓아가려고 아등바등했으나 요즘은 기술이라는 녀석의 뒤꽁무니조차 보이지 않는다.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지금이 21세기라는 건 완벽히 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체감하는 건 찰나다. 이따금, 불쑥, 뒤늦게 실감한다. 책에서만 보던 미래사회의 조각을 손에 쥐면 신기해서 놀랍다가 혼란스럽다. 다시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금방 잊어버린다. 추석 연휴에 영화 시리즈와 시리즈를 다 봤다. 이틀 만에 기나긴 대장정을 마치고 나니 내가 전쟁을 치른 기분이었다. 총 여섯 편의 영화를 아홉 글자로 요약하자면, ‘싸우고 달리고 싸우고.’ 전투가 벌어지고 등장인물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안 나는 의미 없는 참견만 했다. 칼과 화살로 싸우다 보니 온종일 전쟁하던데, ..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0年 10月 8日 :: 지구에 사는 미물입니다 남의 집 지붕에 누워 사람처럼 자는 녀석에게 괜히 말을 건다. 이 아이들은 온몸이 까맣거나, 하얀 얼룩이 있는데, 요즘은 노란 줄무늬도 있다. 녀석들은 연초만 해도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보면 기겁하고 도망쳤다. 이제는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린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는다. 나비야, 하고 부르면 뚱한 표정으로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다시 잠을 청한다. 나가는 길에도, 집에 오는 길에도, 방 창문을 여는 길에도 자고 있다. 이 아이들의 잠의 끝은 어디일까. 끝이라는 게 있기는 할까. 얼마 전까지 나는 고양이만큼 잤다. 8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에 잠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늦게 일어나도 되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11시에 하루를 시작해도 당장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0年 9月 22日 :: 일상에 무능한 어쩐 일인지 우리 가족이 이사 가는 곳마다 집 근처에서 공사가 진행되었다. 대부분 오래된 단독주택을 헐고 빌라를 세우는 공사였다. 그 과정에는 늘 건물과 담벼락을 무너뜨리는 단계가 포함되었다. 며칠에 걸쳐서 시멘트를 부쉈는데, 그 소음이 어마어마했다. 내 방까지 기계음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를 괴롭히기로 작정이나 한 듯 꼭 시험 기간에 공사가 진행되었는데 내게는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마음먹으면 소리가 딱히 거슬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나와 나의 바깥 사이에 방음벽을 세운다. 세상의 소리는 내 허락 없이 내 세상에 들어올 수 없다.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하는 것 외에는 내 눈과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없는 것은 모두 망각한다. .. 더보기
[코로나와 방구석] 2020年 9月 12日 :: 냉소적인 데는 이유가 있다 영혼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말투에 감정이 없다고들 한다. 나는 나름대로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억울하다. 아무리 변명하고 결백을 호소해도 소용이 없다. 나의 기준과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많이 다른가 보다. 언제는 내 글이 ‘시니컬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상처를 받은 것도, 기분이 나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충격’을 받았다. 모르던 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 말이다. 나름대로 밝고 산뜻하게 썼는데, 냉소적이라니.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글에서도 나를 숨길 수 없나 보다. 나라는 사람은 밝은 편이 아니고, 산뜻하지도 않다. 왜 성격이 이 모양인가 고민해봤는데 금방 답을 찾았다. 이게 다 내 이름 때문이다. 내 이름의 첫.. 더보기